환경용어사전 지구 서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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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3일부터 14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 서미트(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 ,UNCED)가 개최되었다. 1백 83개국에서 약 2만 명이 참가하였고, 출석한 각국 수뇌만 해도 1백2명에 이르러 유엔 회의 사상 가장 대규모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비정부 기구(NGO)도 세계 각지에서 1천4백개 단체가 참가했다. 지구환경문제 전반에 관한 대규모 국제회의는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던 유엔 인간환경회의다.
이 회의는 행동계획으로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그후 20년이 지난 뒤에 나타난 결과는 더욱 극심해진 '지구오염의 격화'다. 20년 전의 행동 계획이 거의 실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1992년의 지구 서미트는 유엔 인간환경회의로부터 20주년이 됨을 기념함과 동시에 금세기 , 그리고 2000년 이후의 지구 환경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해 가기 위해 중요한 회의였다.
지구 서미트를 위한 준비와 기대되는 성과를 도표로 그려 보았다.
본회의에서는
①지구헌장으로서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
②환경보전 행동계획으로서 [아젠다 21]
③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
④종의 보전을 위한 [생물학적 다양성 보전조약]
⑤삼림보전을 위한 원칙
⑥환경보전을 위한 자금 공급방책 및 기술이전 등이 토의되었다.
준비단계의 초안 작성에서부터 난항이 거듭되었다. 1992년 4월 4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최종 타결을 위한 제4회 준비 회의에서도 초안을 결정하지 못했으며 남겨진 문제점은 리우본회의로 넘겨졌다. [리우선언]에 '지구환경 악화에 대한 선진국 책임론' 조항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준비단계에서는 양론을 병기하도록 하였다.
행동계획에서는
①삼림보전을 위한 원칙 성명
②기술이전
③자금문제 등이 본회의에 넘겨졌다.
지구 서미트 마지막 날 리우선언, 아젠다21, 기후변화협약, 생물의 다양성조약, 삼림보전의 원칙 성명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산적된 채였다. 남북 대립을 완화하려고 하다 보니 조약과 선언 내용이 전체적으로 '타협의 산물'이 되고 만 것이다. [아젠다 21] 중에서 '정부개발원조'(ODA)의 국민총생산비 0.7%의 달성이 거론되었지만, 달성까지의 제한 시간은 명확히 기재되지 않았다. 기후변화협약은 미국의 반대로 이산화탄소 규제 및 그 달성 영한이라는 골자가 빠지게 되었다. 생물의 다양성조약은 미국측이 유전자 원개발에 관한 지적 소유권 보전을 이유로 마지막까지 조약에 조인하지 않았다. 삼림보전의 원칙 성명에도 개발권만이 전면에 부상되었을 뿐 과연 '보전의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지구 환경문제에 대한 미국측의 입장만 부각된 셈이다. 당시 미국은 가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부시 정권이 국내의 경제 활성화만을 우선한 나머지 이산화탄소 규제에 반대하는 등 자국 이기주의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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